들어가며: 교육 불평등의 시작점
최근, 유명 영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7세 고시’와 초등학생 대상 의대반 설명회에 200명의 학부모가 몰린 사례는 놀랍지만, 또 새삼스럽지 않은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조기 교육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커지면서, 일부 가정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전 모든 한글을 익히고, 구구단과 영어 기초까지 마스터해야 한다"라는 목표를 가지고 취학 전 선행학습을 위해 수백만 원의 사교육비를 투자하곤 한다. 반면, 기초적인 한글이나 수학 학습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채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학습 준비도의 차이는 같은 지역, 같은 학교, 심지어 같은 학급 내에서도 입학 첫날부터 분명하게 나타나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퍼트넘은 저서 '우리 아이들'에서 부유한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의 아이들이 겪는 대조적인 삶을 비교하며, 소득 불평등에 기반한 교육에서의 기회 불평등의 차이가 심화되고 있음을 강조했다(Putnam, 2016). 그의 연구는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필자가 초등교사로 10년 이상 근무하고 있는 지역은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배경 가정이 밀집해 있으며, 저소득층 가정의 비율도 높은 편이다. 이 지역 학교에서는 언어적 장벽, 문화적 차이, 경제적 어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학생들의 학습 환경과 교육 기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이주배경 학생들은 한국어 능력이 부족하여 학습에 어려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부모의 불안정한 경제 상황으로 인해 적절한 교육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본고에서는 이주배경 학생이 밀집한 초등학교에서 나타나는 교육양극화의 실태를 분석하고, 교사로서 경험하는 한계와 고민을 고찰한다. 나아가,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실천적 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주배경 밀집 교실에서 마주하는 교육양극화의 장면들
- 언어 장벽이 만드는 근본적 격차
4학년 A학생은 베트남 출신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잦은 부재로 주로 어머니와 생활하고 있다. A학생은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학교 학습에 필요한 교과 용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
한글을 유창하게 읽고 쓰는 한국 가정의 아이들과 달리, 이주배경 학생 중에는 3~4학년이 되어서도 기본적인 문장 읽기와 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언어적 격차는 모든 교과 학습의 기초가 되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학습 격차가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지는 결과를 만든다.
- 가정 지원 환경의 극심한 차이
중국 출신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B학생은 부모님이 한국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2학년임에도 준비물 및 학급 규칙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교에서는 교육지원청의 도움으로 학급 알림장 및 안내를 중국어로 번역하여 보내드리는 노력을 해 보았지만, 부모님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여전히 가정에서의 학습 지원은 제한적이다. |
가정에서의 지원 차이는 방과 후 더욱 심각하게 두드러진다. 일반 학생들은 가정이나 학원을 통해 그날의 숙제나 복습을 수행하는 반면, 많은 이주배경 학생들은 숙제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아예 하지 않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히 학생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가정에서 적절한 학습 지원을 받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또한, 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사교육의 기회가 제한되고, 긴 노동 시간으로 인해 부모가 자녀의 학습을 직접 관리할 시간이 부족한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습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누적되며, 결국 더 큰 학업 성취의 차이로 이어진다. 이는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장기적인 사회적 불평등의 씨앗이 된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체감하는 교육양극화의 심화 요인
- 소통의 장벽
이주배경 가정의 학생, 학부모와의 소통은 교사에게 어려운 문제 중 하나이다. 먼저, 학생의 경우 수업 시간에 교육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학습에 큰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통역사나 번역 앱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교사가 이 학생들에게 집중하는 동안 다른 학생들의 수업 진도를 놓치는 또 다른 어려움이 발생한다. 결국 정규 수업 시간에 효과적인 수업 진행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나타난다.
학부모의 경우, 안내장, 알림장, 가정통신문 등이 대부분 한국어로 제공되기 때문에, 한국어에 능숙하지 않은 학부모들은 중요한 정보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가정통신문 통역 서비스나 번역 앱을 활용하여 소통을 시도하지만, 정확한 의사전달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특히 학생과 학부모 모두 한국어가 어려운 경우에는 한국어가 가능한 비슷한 가정의 주변 학생을 통해 소통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의사소통의 정확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개인 정보 보호에도 어려움이 생긴다.
- 교사 역량과 지원 시스템의 부족
이주배경 학생이 많은 지역의 초등학교는 교사들이 근무하기를 꺼리는 곳이다. 그 결과, 주로 다른 지역에서 전입해 온 경력이 적은 교사들이 이곳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 전문성 문제가 발생한다. 이주배경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치려면 언어적 장벽을 이해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한 수업을 설계할 수 있는 전문 지식과 역량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 학교에 배치된 경력이 짧은 교사들은 이주배경 학생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교육을 시작하게 되며, 이로 인해 수업 지도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는 교사의 개인적 역량의 문제라기보다 적절한 연수와 준비 없이 복잡한 교육환경에 투입되는 시스템적 문제이다.
둘째, 지원 체계의 부재로 인해 교사의 부담이 가중된다. 이주배경 학생들을 위한 추가적인 지원은 체계적인 시스템이 아닌, 개별 교사의 노력과 시간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한 교사가 20명 이상의 학생을 담당하면서,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충분한 관심과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 사회경제적 격차와 교육 기회의 불평등
이주배경 가정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주배경 학생이 많은 지역은 저소득층 비율이 높아 교육적 지원이 제한적이다. 이로 인해 다른 학생들보다 이주배경 학생들의 교육격차가 더 크게 벌어지게 된다(윤민종, 강충서, 2019).
이러한 교육격차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의 운영 사례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초등학교의 방과후학교는 학부모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지역에서는 수강료 납부가 쉽지 않다. 또한, 낙후된 지역 환경으로 인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유치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 두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방과후수업 강좌 개설이 제한되며, 설령 한 학기에 강좌가 개설되더라도 이후 수강 인원 부족으로 폐강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사회경제적 여건이 좋은 지역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학부모의 충분한 재정적 지원과 적극적인 교육 요구, 그리고 주변의 우수한 인프라를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하여 더 풍부한 강좌가 개설된다. 이러한 차이는 구체적인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동일한 학생 수를 가진 학교를 기준으로 할 때,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은 지역의 초등학교에서는 30~40개의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데 비해, 이주배경 밀집 지역의 학교에서는 10개 남짓한 프로그램만 개설되고 있다.
이와 같은 교육 기회의 양적·질적 차이는 학습 환경의 불균형을 초래하며, 이미 존재하는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치며: ‘우리’ 아이들을 위한 교육 변화의 필요성
이주배경 가정은 사회적 네트워크와 지원이 부족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들은 낯선 환경에서 언어적 장벽, 문화적 차이,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필요한 정보와 자원에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이처럼 이주배경으로 인한 교육격차는 교사 한 명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 구조적 문제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 사회적 인식 개선, 그리고 지역사회와 학교의 유기적 협력을 통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이주배경 학생들의 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학업 성취를 높이기 위해서는 가정, 학교, 지역사회, 정부가 함께 협력하는 통합적 지원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이에 맞추어 최근 정부는 '이주배경학생 맞춤형 교육 지원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정책은 이주배경 학생들의 특수한 교육적 요구를 고려한 맞춤형 지원을 목표로 한다. 또한, 늘봄학교와 학생맞춤통합지원 프로그램은 사회경제적 여건이 취약한 이주배경 학생들의 교육격차를 해소하는 데 효과적인 접근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은 교육 형평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진정한 교육 평등은 모든 구성원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퍼트넘이 강조한 것처럼 ‘우리’라는 공동체의 확장이 필요한 것이다. 앞선 내용에서 암울한 현실을 이야기했지만,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던 학생이 1년 후 친구들과 대화하며 웃는 모습, 이주배경 학생이 학예회에서 자신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모습 등과 같은 작은 성공 사례들은 분명 존재한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기울이는 학교 공동체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이와 같은 작은 성공들이 모여 사회 전체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즉, 학교는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그들'이 아닌 '우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이는 장기적으로 이주배경 학생들의 교육 기회 불평등을 해소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자료 출처: 교육정책포럼 통권381(2025.03.19.발간) 현안문제진단 > 월간 교육정책포럼
필자: 문정민
소속: 경기 시흥초등학교 교사, 2025년 교육현장 자문단
문정민 교사는 현재 경기 시흥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다문화교육, 세계시민교육, 교육불평등 그리고 학부모 교육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다. 또한,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정책네트워크 교육현장 자문단, 교육부 교과용 도서 심의위원, 경기도 학부모교육자문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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