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교육동향] 프랑스 학교의 사회적 혼합 실험이 주는 의미와 시사점

교육정책포럼 통권381호(2025.03.19.발간)

필자: 임밝네

소속: 파리7대학 사회학박사

( 임밝네 박사는 프랑스 파리7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박사후연구원과 연구교수로 재직하였다. 현재 프랑스 파리 거주 중인 독립연구자로 가족정책, 저출산 대응, 고령화 대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론

 

   프랑스는 OECD 국가 중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학생의 학업 성취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큰 나라 중 하나이다(OECD, 2023). 유아기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부모의 사회직업 계층이 학생의 학업 성취와 진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주 배경과 성별 또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사회적 출신이 학업 성취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며, 이는 학교 간 사회적 분리 현상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Barasz, Furic & Galtier, 2023).

 

   사회적 분리는 학생들이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학교 내 또는 학교 간 분리되는 현상을 의미하며, 이는 교육 기회의 형평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나아가 사회통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중학교에서 이러한 분리 현상이 두드러지며, 프랑스 교육부는 사회적 지위 지표(IPS: Indice de position sociale)를 활용하여 이를 계량화하고 있다. 2022년 기준 IPS는 학교별로 45점에서 185점까지 다양하게 나타나며, 점수가 낮을수록 사회적 배경이 취약함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프랑스 교육정책의 핵심 목표는 학교 간 사회적 혼합(mixité sociale)을 통해 학교 분리를 완화하고 교육 기회의 형평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프랑스 교육부는 2016년부터 중학교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적 혼합실험을 진행했으며, 그 성과를 바탕으로 2024년부터 혼합계획(Plan mixité)을 추진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프랑스에서 시행된 사회적 혼합실험의 내용과 결과를 살펴보고, 이를 통한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프랑스의 사회적 혼합 실험 배경 및 목적

 

   학교 분리(ségrégation scolaire)는 사회경제적 특성에 따라 학생들이 특정 학교나 동일 학교 내 특정 학급에 집중되는 현상으로, 이로 인해 사회적 혼합이 약화된다(Charousset et al., 2023). 학교 분리는 가정환경이 개인에게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 외에도 학업성취, 사회통합 및 공통의 시민 문화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Boutchenik, Givord & Monso, 2018).

 

   특히, 프랑스 중학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사회적 분리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에 의해 심화되었으며, 이는 사회적 혼합이 교육정책의 주요 목표가 되는 배경이 되었다.

   첫째, 주거지에 따른 사회경제적 배경 차이가 학교 간 분리 현상을 심화시키며, 근거리 학교 배정시스템이 이를 더욱 고착화했다. 사회적 취약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지역 내 교육환경이 ‘불리한’ 중학교에 다니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부유층은 ‘좋은’ 중학교가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둘째,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부모들이 공립학교보다 사립학교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사회적 출신에 따른 학교 분리가 더욱 심화되었다. 동일 지역 내에서도 사립중학교와 공립중학교 간 학생들의 사회적 출신이 현저히 다른 점이 이러한 현상을 반영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사회적 혼합은 교육 기회의 형평성을 높이고 학교 분리 수준을 완화함으로써 사회통합을 촉진하는 중요한 정책적 개입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특히, 2013년 제정된 ‘공화국 학교 재건법’(Loi de la Refondation de l’école de la République)은 사회적 혼합을 공교육의 사명으로 명문화하였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2016년부터 중학교를 중심으로 사회적 혼합 실험을 시행했으며, 2023년 발표된 혼합계획을 통해 2024년부터 3년간 사회적 혼합 강화를 위한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혼합계획의 주요 목표는 학교 간 사회적 분리를 20% 감소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립학교의 참여 확대 및 ‘사회적 혼합 교육협의체’(instances acadélmique de concertation pour la mixité sociae) 설치 방안을 포함하였다. 이와 관련해 교육법 제 L.442-11조는 본 협의체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으나 2025년 현재까지 구체적인 시행 방안은 충분히 문서화되지 않은 상태이다.

 

 

   프랑스의 사회적 혼합 실험 내용

 

- 사회적 혼합 측정 방법

   사회적 혼합은 학교 내 학생들의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의미하며, 부모의 직업과 사회적 범주, 이주 배경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Observatoire des inégalités, 2022). 앞서 언급하였듯이 프랑스는 IPS를 활용해 학교 내 및 학교 간 사회적 혼합 수준을 계량화하고 있으며, 이는 부모의 직업 및 사회적 범주(PCS: profession et catégories sociales)를 기반으로 45점에서 185점 사이의 점수로 나타난다. IPS 평균 점수를 통해 학교 간 사회적 지위를 비교할 수 있으며, 사회적 이질성 지수(Indice d’gétérogénéité sociale)를 활용해 학교 내 사회적 배경의 다양성을 측정한다. IPS 표준 편차가 높을수록 해당 학교의 사회적 배경이 다양하다는 의미이며, 이를 통해 학교 간 및 학급 간 사회적 구성을 분석할 수 있다. 프랑스의 중학교는 공립중학교와 사립중학교로 나뉘며, 공립중학교는 우선교육네트워크 중학교와 그 외 공립중학교로 분류된다. [그림1]은 학교별 IPS평균 점수로 프랑스 내 중학교 간 사회적 분리 양상을 잘 보여준다.

 

 

자료: Ministère de l’éducation nationale et de la jeunesse, 2023, p.8

[그림 1] 2022년 프랑스 중학교 종류에 따른 평균 사회적 지위 지표(IPS)

 

 

- 사회적 혼합 강화를 위한 다섯 가지 장치

   프랑스는 22개 지역의 56개 공립중학교를 대상으로 다음의 다섯 가지 사회적 혼합 장치를 시행하였다.

   첫째, 근거리에 위치하지만, 학생들의 사회적 구성이 다른 중학교들을 통합하여, 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사회적 혼합 알고리즘에 따라 학교 배정을 실시하였다.

   둘째, 특정 지역 내 두 개의 중학교에 학생들을 2년마다 순환 배정하여3), 특정 학교에 사회적 배경이 유사한 학생들이 집중되는 현상을 완화하였다.

   셋째, 기존의 우선교육네트워크 지역을 재조정하여, 사회적 취약지역 일부를 제외하거나 인근의 사회적 배경이 양호한 지역과 통합하였다.

   넷째, 특정 지역에서 중학교를 신설하거나 폐쇄하여 학생들의 사회적 구성을 조정하였다.

   다섯째, 사회적으로 취약한 중학교에 음악, 이중언어, 유럽 및 국제 과정 등의 특별 학급을 개설하여 해당 중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을 높이고 기피 현상을 완화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혼합 실험에 참여하기로 자원한 교육감, 지방정부 및 학교는 각 지역의 사회적,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가장 적합한 조치를 선택하여 실행하였다.

 

 

   사회적 혼합 실험의 주요 결과 및 효과 분석

 

   사회적 혼합 조치의 효과를 평가하기 위해 실험집단과 사회적 구성 및 학업 성취도가 유사한 통제집단을 선정하여 사회적 혼합이 학교의 사회적 구성과 학생에게 미친 영향을 비교·분석하였다. 사회적 혼합 실험의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사회적 지위가 낮은 학생들이 사회적 지위가 높은 학생과 접촉하는 빈도가 증가하였으며, 반대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학생들이 사회적 지위가 낮은 학생들과 접촉하는 비율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증가하였다. 이로 인해 학교 간 및 학급 내 사회적 구성의 다양성이 높아졌다. 또한, 사립학교나 기존 배정지 외의 중학교를 선택하는 가구 수의 변화는 거의 관찰되지 않았다. 이는 사회적 혼합 정책에 대한 학부모들의 긍정적인 인식과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선택 간 균형이 형성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사회적 혼합의 증가는 학업성취(불어와 수학)와 학생 행동(결석, 지각, 체벌) 같은 ‘학업 영역’에는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적 혼합의 개선은 자아인식, 학교 만족도, 사회적 태도 등과 같은 ‘비학업 영역’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학생들은 학교 안정감 증가, 긍정적인 자아 인식 향상, 더 나은 교우관계 및 협력적 태도 발달 등의 효과를 보였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학생들 역시 학문적 자부심, 낙관주의, 협력성 및 공동체 의식 강화 등의 변화를 경험하였다.

 

 

   결론 및 시사점

 

   프랑스의 사회적 혼합실험의 결과는 국가의 적극적인 정책이 학교 내에서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의 균형 있는 분포를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정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비록 교육부 장관의 기대처럼 사회적 지위가 낮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단기간 내에 크게 향상되지는 않았지만(Grenet et al., 2023), 해당 실험은 3~4년의 제한된 기간 동안 진행되었기에 사회적 혼합의 장기적인 영향을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른 단계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학교 분리 수준이 낮지만(유지은, 2016)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학업성취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김지수 외, 2017; 이정민, 김혜원, 2021). 또한 한국은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저출산 문제로 인해 이주 정책이 변화하고 있으며, 이주 배경을 가진 아동·청소년들의 증가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의 사회적 혼합 실험은 한국에서도 사회적 혼합을 통한 교육 기회 형평성 제고와 사회통합 촉진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프랑스는 공교육에 대한 높은 신뢰와 적극적인 정책 개입을 바탕으로 사회적 혼합 실험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는 한국에서도 교육적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교육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강화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국가 차원의 정책적 개입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자료 출처: 외국교육동향 > 월간 교육정책포럼